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게시판
  2. 상품 Q&A

상품 Q&A

상품 Q&A 입니다.

상품 게시판 상세
제목 경사리 가는길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1-12-18 16:31:24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888
 

 

 

 

<갈보리>라는 성가 연습 중이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향해 갈보리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의 비장한 심정에 관한 가사인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연습을 아무리 반복해도 가사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화음과 음정 등은 이미 다듬어졌지만, 죽음의 길을 홀로 가야만 하는 고뇌에 찬 예수님의 절절한 심정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성가대원들의 표정엔 어떤 떨림도 감동도 없었다. 그냥 늘 훈련해온 성가대모습 그대로 밋밋하고 덤덤했다. 성가대원 스스로의 감성을 끌어 올리고 그 뭉클한 느낌을 청중들에게 그대로 전달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날 나는 잠시 연습을 멈추고, 가사가 주는 느낌과 곡의 이미지를 어떻게 떠올려 보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왜 이 곡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나의 골고다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있었다. 그는 경사리에 산다고 했다. 행정구역상 내가 살던 동네와 면이 달랐기 때문에 경사리라는 마을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 친구와 나는 1학년 내내 늘 붙어 다녔고, 겨울 방학을 맞아 친구네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경사리 마을은 양지쪽에 꼬막껍질처럼 올망졸망한 초가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앉은 깊은 산골마을이었다. 그런데 동네 집들의 처마 밑엔 처음 보는 이상한 씨앗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 씨앗들에 대한 의문은 금방 풀렸다. 반갑게 나를 맞이하는 친구의 손가락과 입술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던 까닭이다.

친구는 방학 내내 산수유 씨앗을 까서 그렇다며 수줍게 웃었다. 산수유를 수확하고 나면 겨우내 솥에 삶아서 입과 손으로 씨를 분리한 껍질을 말려 한약방에 내다판다고 했다. 맙소사, 도대체 저 빨갛게 익은 작은 산수유 열매를 얼마만큼 씨앗을 빼야 저렇게 마당마다 씨앗동산을 이루게 되는 것인지 나는 무척 놀라웠다.

겨울이 가고 이듬해 봄, 다시 한 번 경사리를 찾았다.

그때는 산수유 꽃이 만발하는 시기였다. 마을 입구부터 골목골목마다 온통 산수유 꽃이 찬란한 황금빛 꽃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황홀한 경사리 풍경에 흠뻑 빠져 버렸고, 동네 언덕으로 뻗어나간 목장 길을 친구와 걸으며 마음속으로 장차 저런 목가적 풍경 넘치는 곳에 사는 사람과 결혼해 살아야겠다는 꿈을 그리게 되었다.

성경 히브리서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말씀이 나온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뒤 나는 목장집 아낙이 되었고, 두메산골 경사리 마을은 이제 봄마다 산수유 꽃 축제를 여는 전국적인 명소로 등장했다. 결혼한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친정을 떠 올릴 때나 그 친구가 보고플 때면 경사리를 추억하곤 했었다.

경사리는 그렇게 소녀시절의 황금빛 꿈이 담긴 마음속의 아름다운 고향이었지만, 언제부턴가는 나에게 눈물의 지명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경사리 마을 맞은편 언덕에 몇 해 전 망자들의 영원한 휴식처인 추모의 집이 지어졌고, 봄이면 찬란하게 빛나던 그 황금빛 마을이 바라보이는 아늑한 그곳에 채 꽃을 피우지 못하고 떠난 내 동생을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 갈보리, ~ 갈보리, 주 예수 나를 위하여

성가 <갈보리>의 이 대목을 부를 때마다 나는 목이 멘다.

사랑하는 동생을 경사리 추모의 집에 홀로 두고 돌아오던 그 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울부짖던 모습과 우리 모두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고뇌에 찬 발걸음이 흐릿하게 겹쳐지곤 했기 때문이다…….

 

대원들의 무덤덤한 감성을 건드리기 위해 시작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의 절절한 감성이 제대로 전달되었던 것일까. 이어진 연습에서 성가가 클라이맥스에 오르자, 놀랍게도 우리 모두의 목소리는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노래의 시구가 추억과 버무려져 울컥 가슴을 적셨던 그런 날이었다.

첨부파일
비밀번호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관리자게시 게시안함 스팸신고 스팸해제 목록 삭제 수정 답변
  • 이미용 2011-01-20 22:17:18 0점
    수정 삭제 댓글
    스팸글 병임이누나!너무나가슴아픈사연이군요.저또한동생을그렇게보냈었지요.이제는다가고몇안남은형제들을보며살며시눈물이나오네요.그리스도안에서축복누리소서!!
  • 공병임 2011-01-22 15:01:25 0점
    수정 삭제 댓글
    스팸글 사는게 다 그렇지머. 세월이 가면 슬픔이 흐려질줄 알았는데 더 선명해 지고 그러더라구여.
스팸신고 스팸해제
댓글 수정

비밀번호 :

수정 취소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댓글 입력
댓글달기 이름 : 비밀번호 : 관리자답변보기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확인

/ byte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관리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 상품검색

    상품검색
  • 장바구니

    장바구니
  • 주문조회

    주문조회
  • 인스타

    인스타그램
  • 블로그

    블로그

BANK INFO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핀터레스트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