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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봄 나들이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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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3
 

햇살이 눈부신 3월이다.
진해에서는 어느새 벚꽃 축제가 한창이고 우리 집엔 정월 에 담은 장 버무리기로 분주한 한 주일을 보내고 있었다. 목련과 샛노란 개나리가 수선스럽게 뒤뜰을 수놓을 무렵이면 죽리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봄나들이를 계획한다. 못자리 할 새 흙 고르고 아침저녁으로 고추며 담배모종 키우는 비닐 하우스를 애기 돌보듯 보듬어야 하지만 이때 아니면 농촌의 일손이 그리 녹녹치 않음이라 언제부터인지 불문율처럼 그렇게 나들이를 나서고 있다.
죽리 에 산지가 20 여 년이 넘는가 보다. 내가 청원군의 한 야트막한 골짜기로 시집온 지 3년이 넘을 쯤 남편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말했다. 그땐 외딴 골짜기에서 외로움에 지칠 무렵이라 마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라 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정겨운 집과 사람들이 순박하고 고와 첫눈에 맘에 들었다. 목장 새댁이었던 내 호칭이 그냥 새댁으로 바뀌고 그리고 그곳에서 승희와 창희를 낳아 길렀으며 남편은 마을 이장으로 또 마을 수의사로 그렇게 죽리 사람이 되었다.
첨 죽리엔 집집마다 노 어른들이 많이 계셨었다. 장수 마을처럼 불려지고 딸 부잣집이 많고 대처에서 성공한 인물들이 많고, 그런데 지금은 어느 농촌에서나 볼 수 있듯이 젊은이가 없다.
이 장님이 방송 멘트로 회관에 모이시란 말만 못 들었으면 난 늦잠이 들었을 터였다. 무거운 장 항아리랑 전날 늦게 까지 씨름한 터라 온몸이 천근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다 떠나는 철엽 인지라 꾸러미 꾸러미 짐도 많고 ,다소 상기된 얼굴로 구십이 다된 송정할아버지가 젤 먼저와 차를 기다리고 계셨다. '바쁜데 새댁이 가서 좋구먼' 새댁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첨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불린 까닭이다. 사실이지 차에 오른 마을 어른들의 평균 연령이 65세다. 마로 도스 구씨 아저씨의 연세가 80이 되셨다니 그럴 만도 한데 구씨 아저씨는 배도 안타보고 멋진 개동 모자와 선글라스가 그런 별명을 붙게 했나 보다. 이제 서서히 농촌 일손은 바빠지고 흙먼지 속에서 살아야 할텐데 일찌감치 마을 단합 대회겸 나들이는 설레는 연중 행사인 것이다.
차에 오르신 어른들의 표정이 밝고 흐뭇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가지씩 상처를 안고 사시는 분들이다 .용호 할아버지는 여전히 젊은 이처럼 씩씩한데 용호 할머니는 아주 아주 늙으셔서 보기에도 딱하다 싶을 만큼 힘이 없다. 용호 아빠가 하루아침에 저 세상 사람이 되고 용호 엄마도 재혼해 떠나갔으니 얼마나 속을 끓이 셨을까
.지금 관광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재평골 아저씨의 아들이다. 두 양주 분이 몇 해전 세상을 떠나셔서 쓸쓸한 본가 집만 남았는데 기사아저씨의 인사말이 참 좋다. 꼭 부모님 모시고 나들이 가는 기분입니다. 건강들 하시고 오래오래 사셔요 라고. 이차에 타신 모든 분들이 그의 어렸을 적 벌거숭이를 기른 부모님 같은 분들이니까 그 말은 꼭 맞는 말이다.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모처럼 집안 일에서 벗어나 시원스런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어린애가 된 느낌이다. 설악산으로 들어서는 길가에 벚꽃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 듯 말 듯 수줍어하고 개나리만 노랗게 웃고 있다. 일정을 한두주 늦췄으면 꽃 잔치 만발한 화사한 길이 엇겠는데 언제나 마을 나들이는 이른봄이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어른들을 모시고 산행은 엄두도 못 내고 그냥 케이블카만 타고 산 중턱까지 가보는 것으로 설악의 산자락에 발도장 만 찍어도 좋아라 했다. 늘 보아오던 두타산이나 삼보산 자락의 숲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낙산사 경내를 천천히 걸으며 오랜만에 선주 엄마랑 아이들 이야기를 해봤다. 고만 고만한 딸 셋에 아들 하나 두고 종갓집 종부로 수 없는 제사상 차리던 그녀는 이제 버거운 삶에서 놓인 것 같아 보기 좋았는데 벌써 허리가 아파 일을 못하겠다니 큰일이다. 관광차 안에는 나말고도 새댁이 또 있었다 .굼벵이 할머니가 그분인데 하얀 바지를 입고 살래살래 춤추는 모습이 언제나 젊고 멋지다. 마을에서 뵈는 어려운 어른들이 나들이 갈 땐 한데 어루러져 도무지 형수도 제수 씨도 아재도 없다.
그러니 아침부터 틀어놓은 신나는 음악 앞에 가만히 앉아 가게 하질 않는다. 가무엔 젠병인 나도 엉덩이 흔드는 척 하며 애교를 떨어야 잘한다고 하시니 즐거운 고역이랄까.
샘안댁 아주머니가 어깨를 들썩이며 공여사를 연신 부른다. 뒷자리로 숨어도 용케 아시고 불러 세우는데 그분의 큰딸 선임 이가 3년 전에 임파선 암으로 세상을 떠서 눈에 눈물 달고 사셨다. 나랑 동갑이고 그렇게 곰살맞던 딸이 마지막 눈감을 땐 복수때문에 숨이 차서 아이들 부탁의 말도 못하고 갔다고 얼마나 기가 막혀 하셨던지. 이렇게 라도 훌훌 털어 내고 견디시는 게 보기 좋아 나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었다.
관광차 안에서 음주 가무로 인해 큰 사고를 부른다고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 좁은 차안에서 춤을 추는 문화가 생긴 거냐고 내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같이 여행을 떠나 보면 그렇게 흥겨운 놀이가 없어 보이고 ,점잖은 어른들의 가슴에 신명이 많았나 놀라울 때가 많다. 방송에서 가끔 보던 고려인들이 축제 때면 서슴없이 흥겨운 춤사위를 펼치는 것이 보기 좋았는데 그 느낌이 나들이를 할 때면 느껴지는 것이다.
주문 진 에 가서 싱싱한 해산물도 사 넣고 안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먹으며 해가 설핏해 지는데 차안의 어른들은 지치지도 않고 춤을 추시는 거였다. 배나 무골 아주머니나 용대 아주머니, 그 많은 담배농사와 나이 먹은 아들 혼사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필리핀 며느리를 얻으시고야 손자를 보셨는데, 희망 없는 농촌 살림 같으나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것이다. 소재 아주머니까지 휘적휘적 춤을 추셔서 얼마나 웃었는지 나중에 발에서 불이 나는 것처럼 발바닥이며 장단지가 아파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니 젊은이가 그렇다며 핀잔을 주신다.
아침 일찍 떠난 관광차는 저녁 열 시가 되어서야 마을 회관 앞에다 우릴 내려놓는다. 집에 남은 소와 비닐 하우스 관리 때문에 대부분 혼자서 다녀왔는데 금성 아저씨랑 소재 구 이장까지 다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렇게 끈끈한 가족 애와, 마을 공동체 의 사랑이 없다면 벌써 도시화 되어버렸을 농촌이다. 낼 점심에 남은 설거지하면서 뒤풀이로 소주 한잔씩 하실 어른들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이시고 졸지도 않고 마을을 비추고 서 있는 가로등이 정겹게 다가오던 날이었다.
올 봄 나들이도 이렇게 한 획을 그으며 죽리에 사는 나이테를 보태고 있다.

2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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