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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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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01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버지
어느새 가을걷이가 끝나 가는 들녘은 쓸쓸한 초겨울이네요.
지난여름을 잘도 견뎌 튼실한 알곡을 내어준 대지 위에서 야윈 아버지 혼자 가을 을 거두셨군요.
어쩌면 가을과 아버지는 잘 어울리는 연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늘 부지런 하셔서 거둘 것이 많은 농부이신 아버지가 풍요로운 가을을 닮았거든요. 이제 논두렁에 심은 서리 태 콩만 거둬들이면 가을걷이가 끝나 가는 거지요? 우리 집 뒤뜰에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월하 감을 딸 때가 되었네요. 올해엔 해거리 끝이라서 지난해 보다 좀 덜 달렸지만 주말에 그 감을 따면 아버지 뵈러 갈게요.
아버지,
지난번에 낡은 싱크대를 교체 하려고 할 때에 안방에 장롱도 붙박이 장 으로 바꿀까 생각해 본적이 있어요. 25년이 지나기도 했지만 말썽꾸러기 아이들 키우며 흠집이 많아졌거든요. 그 장롱은 22살 철없던 제가 시집을 간다고 하니까 아버지께서 공장에 가서 손수 맞추어 오신 거지요. 제 짐과 함께 장롱을 신혼집으로 실어 오셨는데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아버지 가시는 길에 배웅도 안했잖아요. 장롱을 실어다 주시며 하나 밖에 없는 딸 시집보내는 애잔한 아버지 맘을 제가 어찌 알았겠어요. 내손을 잡고 신부입장 할 때에 보았지요. 아버지의 떨리는 손과 충혈된 눈을. 이젠 그 낡고 오래된 장롱도 아버지의 기억 때문에 정감 있는 눈으로 바라 볼 수 있어서 그냥 간직하기로 했어요.
아버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버지께 저는 깨물지 않아도 아픈 손가락 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홍역으로 디프테리아로, 그리고 나중엔 척추결핵으로 사경을 헤맬 때 읍내 까지 20여리 길을 날 없고 단숨에 간일이 한두 번 아니었다고 했어요. 결국 여러 번의 수술로 애간장이 타는 날들을 아버지는 병상 일기를 쓰시며 견뎠다고 하셨죠. 아버지의 일기를 우연히 읽어본 막내 고모가 눈물이 나서 더 읽지 못했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아버지,
올가을엔 장괭이 뜰에서 막내아들생각에 남몰래 삼킨 눈물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가슴에 묻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제 가슴도 미어져 옵니다.
아버지 앞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했고, “아버지 죄송해요” 라는 마지막 인사를 했지요. 아버진 짐승 소리 같은 울음을 토해 내셨어요. 그렇게 건강했던 아들이 아버지도 견딘 암세포에 져서 가을 꽃 처럼 스러져 갔지요.
살아가면서 이렇게 가슴 무너지는 일이 우리 앞에 있을 줄 상상이나 했었나요.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지 벌써 일 년이지나 가고 있어요. 시간이 간다고 기억까지 빛바래진 않겠지만 , 아니 오히려 더 선명하게 우리의 가슴에 자리하지만 이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동생을 놓아주면 안 될까요? 아버지에겐 어리기만 한 막내아들도 세 아이의 아버지 였던 것을요. 6살짜리 철부지 아들을 두고 차마 눈감지 못한 당신의 아들 맘도 아시지요?
우리가 너무 슬픔에 잠겨 있으면 동생 맘도 편치 않을 거잖아요. 출장 간 거라고, 이민 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보세요. 우린 이다음 천국에서 다시 만날 기약과 소망이 있잖아요.
아버지 ,
지난 추석 무렵 벌초 할 때에 제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도와 선산에 간적이 있었죠. 아들을 그곳에 묻지 않고 굳이 납골당에 안치한 아버지의 고집을 그때야 알았어요. 늙으신 아버지가 어떻게 아들의 산소에 벌초를 하겠느냐고요. 막내아들의 몫까지 아버지 살아계신 동안 제가 다 하겠다고 그날 다짐을 했어요. 아버지 몸은 비록 야위실 대로 야위셨지만 정신은 더 또렷이 하셔서 우리 곁에 오래도록 계셔야 해요.
아버지,
그냥 조용히 불러보아도 가슴이 따뜻해지는데 어떡해요 자꾸만 세월이 우리 아버지를 쇠약해지게 해서 더럭 겁이나요.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이시지만 우리식구 모두는 6살 조카에게 또 다른 아버지 이여야 하잖아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오래도록 우리들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아버지가 이제껏 살아오신 것처럼 꿋꿋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멋지게 우리 곁에 계셔 주세요.
그땐 몰랐던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은 늦은 철듦에 아버지께 고백해요
아버지,
정말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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