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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들의 나들이
작성자 공병임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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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0-02-20 11: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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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20

 두달전에 2년 가까이 타고 다니던 마티즈를 봉고로 다시 바꾸었다. 봉고만 벌써 세번
째 차다. 나야 아이들 일 하는 사람이니 봉고운전은 당연한데 내가 차를 바꿨다하니
주변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그리 많던지.. 선생님도 그중 한분이시다.
" 야~ 거 잘됐다 우리 공병림이 집에 한번 다녀오자 된장 한번 실으러 응? "
이렇게해서 난 선생님과 소설가인 박작가와 함께 길을 나섰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마침 휴가철임을 생각못하고 느긋하게 10시에 인천에서
출발하였더니 좀 막힌다.
그래도 어떠랴,, 모처럼만의 여행이라 마음 설레고 귀는 즐겁기만 하다.
아리따운 제자는 운전하고 옆에선 두 문인들의 지칠줄 모르는 입담이 시작된다.
한참을 막히더니 중부고속도로로 빠지는 호법 인터체인지쯤에 도착하니 다시 길이
뚫린다.
중부고속도로가 북한에서 우리나라가 시멘트를 공급받아 닦여진 도로라는거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러고보니 난 참,, 세상에 나오면 맨 모르는거 투성이이다.
박작가는 등단하기전 사법고시하니라 5년간을 법공부를하던 분인데 고교 내 4년선배의
남편이다. 이번 만남이 9년만인 것이다.
선생님은 제자보다 같은 문인인 그 남편과 더 의기투합되어 가까이 지내신다.

9년 넘게만에 똑같은 멤버가 똑같은 장소로 여행하는것이다.
9년전 내 처녀적 마지막 여행을 뜻깊게 여행하였던 전력이 있던 멤버여 반가움이 컸고
그 여행후에 남편과의 결혼 결심도 하였었고 남자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내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장본인들이시다.
박작가는 날 보자마자 그 남자와 잘사냐 하며 먼저 안부를 묻는다.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9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자주 보고 지내왔던 이처럼 친근한 느낌
에 말이다.

공병림 선배,,,내 고교 5년선배이고 우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제자들중 최고로
성공한 제자라 하시며 늘 입에 침 튀기시며 자랑하던 선배였고 학교적부터  소문만 듣고
있었지 실제론 지난 95년도 2월에 여행가서 처음 대면 하였고 그 이후에도 간간히 소식만
들었었고 찾아보진 못하였었다.
충북 증평군,,,
9년전 선배는 축산업을 하여 낙농업이 잘 되고 있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치여 소 파동이
나고 하는 격동의 세월을 겪고 하더니 지금은 7년전부터 된장 사업을 하고 있었다.
제법 자리도 잡히고 규모도 있는 장 공장 ' 죽리 토종 식품'의 사장인것이다.

나역시 '첼로와 메주'의 도완녀씨가 파는 된장을 사먹어 본 사람이지만 그것보다 값도
더 비싸고 고급인 장이다.
값도 싸고 맛도 좋고 한 식품은 있을수 없다고 하며 비싸지만 입소문이 잘 나서 사업이
번창하고 있는지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사업을 하는 선배의 눈빛이 빛난다.
여행이랍시고 찾아간 우리들 세명의 건달?과는 차원이 다른 새벽을 뛰는듯한
사람의 얼굴...긴장과 힘이 맴도는듯한 기운에 잠깐 부러움을 느껴보았다.

공병림 선배의 집엘 찾게된것은 순전히 선생님과 선배와의 20여년 넘게 지속 되어온
수백여통의 편지를 다시 전달해 주려고 온것이다.
선배는 인구 3만 5천여명 모여사는 작은 증평군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여 10년전부터
지역신문인 증평신문의 고정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그 지역 최초로 문학회 동호회를
창단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한 지방이지만 나름대론 유명인사다.
20여년간 스승과 제자가 주고 받은 편지가 이젠 너무나 많고 선배의 20여년의 역사가
들어있는, 내용이 훌륭하고 이야깃거리가 된다 판단하시어 문인이신 선생님께서
책을 내보라 권하시느라 그 수백통의 편지를 이사도 여러번 하였건만 그간에 그걸 들고
다니셨단다. 너무도 소중하여 언젠가 돌려주리라 하시며...
편지를 주고받는 여정속에서 선생님은 제자인 선배의 삶속에 선생님의 꿈도, 목적도
이루어 나가는걸 느껴가며 당신이 직접 성공한 인생인것처럼 제자의 농촌 생활 속에
건강히 가정을 가꾸고 꿈을 이뤄 실천해 나가는 선배가 그렇게 자랑스러울수가 없었단다.



10년 가까이 쌓였던 정을 풀기엔 너무나 긴 이야기가 필요했지만 우린 증평에 도착 하자마
자 선배가 점심식사를 예약했다하여 선배네 집 근처엔 슈퍼도 없는 그야말로 오지와도
같은 인가가 드믄 곳에서 살고 있었기에 다시 차를 돌려 근처 초정 약수터에 가기로 하였다.
장소에 도착하니 온천하러 오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일대가 예쁜 동화속 아름드리 집들로
가득하였다. 모텔말이다.
길을 나서면 가장 즐거운것 중 하나가 먹는 즐거움이다보니 난 처음 먹어보는 오리 진흙구
이를 흥미롭게 기대하면서 아주 맛나게 먹었다.
기름끼를 쪽 뺀 담백한 맛, 온갖 한방재료의 향이 구수하여 입안을 가득 군침 돌게하고 운전
수인 나를 제외한 세명의 신선은 백세주를 곁들여 오리구이의 별미를 더욱 즐기고 있다.

늦은 점심 식사가 끝나고 우린 선배의 안내로 근처 초정 약수터로 향했다.
세종대왕이 마시던 약수라 한다. 난 설악산의 오색약수를 마셔 보았는데도 그 초정약수의
톡~ 쏘는듯한 사이다맛 약수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원조 약수의 진미를 느낄수가 있었다.
선배말처럼 설탕만 넣으면 그야말로 진짜 사이다맛이다.
약숫물도 한잔 곁들였으니 이제 우리 일행은 선배의 안내로 그리고 나의 노련한 운전으로
다시 괴산으로 향했다. 거기 화양구곡에 발 담그러 말이다.
난 계곡이란 말은 알아도 구곡이란 말은 또 처음이라 여러모로 박식한 박작가에게 물었더니
구불구불한 계곡을 구곡이라한다.
모르는것에 별로 부끄러움이 없는 편이어 궁금하면 별걸 다 물어보는 편이다.

화양구곡으로 향하는 길목엔 꼭 강원도의 굽이굽이 길을 오르는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길이 비슷하였다. 속리산 줄기가 이어진 산맥이어 그런지 산수경관이 수려했고 운전하는
나와 다른 일행들의 그칠줄 모르는 이야기들이 노래되어 화양구곡 가는 아름드리 길목을
정겹게 수 놓는다.
드디어 도착한 화양구곡, 차를 주차해 놓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선배말에 잔뜩
긴장하며 걷기 시작하는데 꼭대기에서 식당을 하는 맘 좋은 아주머니 한분이 오르는길이니
봉고에 타라하신다. 옳타구나다~ 잘 걷지를 못하는 난 얼마나 반가운지 일등으로 차를 탔다.

휴가철이지만 아직까진 그리 복잡하진 않았다. 적당히 사람들이 먼저와 자릴잡고선 여독을
풀고 있었고 우리 일행도 평상 하나에 도토리묵 한사라와 탁주 한 항아리를 곁들여 다시 세월
을,문학을,인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꽃이 무르익는 중에 갑자기 선생님께서 웃통을 벗으신다.
우스갯소리로 선생님은 친구분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가 있다.

' 오작가는 술만 취하면 웃통을 벗고 알통자랑을 한다고...'

당신 나름대로 가난하고 글쓰는 재주밖에 달리 없으신 선생님께선 돈으로, 세상의 권력으로
나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기백를 과시하고 나를 무시하지마라 하는, 범할수없는 당
신만의 기백을 표현하고 싶은것일수도 있겠지만 인천의 문인들 사이에선 유명한 일화라하신
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체형,,,겉보기엔 너무나 작고 마르시어 연민까지 느껴질정도로
연약해 보이지만 젊은 시절부터 해오신 운동으로 선생님은 아주 강인한 체력이시다.
그 마른 나뭇가지같은 팔뚝에서 불뚝~하고 우두박근같은 알통이 단단하게 삐져나오던 모습
이 얼마나 우습던지,,,

우리들의 이야기가 끝날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데 왼쪽의 60대 할머니들 모임에선 트로트
메들리가 연이어지고 있었다. 탁주 한사발 거나하게 자시고들 이리저리 흔드시며 즐거이
노시는 할머니들의 노랫가락,,,
엽전 열닷냥,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봐, 울고넘는 박달재까지
집에서나 내 생활권 어디에서 듣거나 할땐 소음처럼 들리더니 화양구곡 깊은 숲속에 울려퍼
지는 얼굴 불그스레해진 할머니들의 신명나는 한판 춤과 트로트는 어쩐지 정겹기까지했다.
오른쪽 계곡의 줄기에선 여기서도 풍덩~저기서도 풍덩~짜르르 하는 놀러온 사람들의 시원
한 물놀이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곳에서 볼수 없었던 풍경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모두들 옷을 입은채로 풍덩~하고 물놀이를 하거나 보트타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런말을 했던게 생각난다. 화양구곡에 오면 물속에 풍덩~하고 빠져봐야 한다고...
그러나 난 발 담가보지도 못하는, 노는거에 쑥맥이어 겨우 손 한번 담궈 씻어보기만 하였다.
그저 보는거에 족하고 그것으로도 즐겁다.

선생님의 계속되는 핏발서린 이야기중 섬뜩함으로 내 가슴에 묻힌 말,,,
이제 늙어 66세 되어보니 이제서부터 할일이 그리 많아지셨단다.
100세까지는 최소한 살아야 하신단다. 할일을 다 마치려면, 평생 시를 쓰시고 희곡을 쓰시
고 하신 선생님께선 그동안 모아 놓으셨던 자료들 스크랩해 놓으신것만 책으로 수십권이라
하신다.
그것 다 사용해 글 쓰시려면 앞으로 100세까지는 살아야 그 일을 다 마칠수있다 하시는데
그걸 끝내지 못하면 눈을 감을수가 없다 하신다.

" 애들아~ 난 내 몸을 칼날로 세워 앞으로 100세까지 살으련다! "

무서운 말씀이시다.
선생님과 박작가는 두분 다 글 쓰는 직업이라 건강 관리를 위해 매일 운동을 하시고
공선배는 된장 사업을 위해 새벽부터 깨어나 농촌에서의 일과를 운동보다 더 단단한
노동으로 절로 건강 여인이 되어 있었는데 가장 젊은 나만이 맥도 못추는 빈약하고
여리여리한,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힘 하나 쓸줄도 모르는, 허당인 개털 인생을 살고
있었다니... 부끄러웠다.



화양구곡에서의 비수같던 언어들 무수하여 가슴이 다 뚫리고, 녹색빛이 가득했던 숲의 절경
에 취해 충만히 차오르던 감동속에 우리 일행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공선배의 집에 도착하니 주위는 벌써 어둑해지고 너른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우리는 구곡에
서 마셨던 탁주의 취기가 다 깨었는데 선배가 직접 담갔다는 솔방울 술을 들고 나오니 두분
선생님들께선 마다하지 않고 다시 솔향 그윽한 술을 들이키신다.
적당히 두잔씩만 마시고 된징집에 왔으니 된장찌개로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우리들은 인천
으로 길을 재촉했다.

박작가가 그런다. 자기가 운전한다고, 숙녀를 하루종일을 운전하게해 남자 체면이 말이 아니
라나 하면서...
음주운전 아니냐 했더니 이정돈 음주 아니다라며 고집스럽게 차 키를 빼앗는다.
증평의 칠흙같은 까만밤을 뚫고 시원한 자연바람을 가르며 우리들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하루가 몇날인것처럼 긴 여행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얼마나 뿌듯함속에 서로를 바라 보았던가, 우리들 서있는
삶을 다시 돌아보고 정리할수 있었던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멋진 하루였었다.
적당히 취하였고 적당히 기분도 좋고해서 주위가 다 어둡다보니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모여 이야기의 화두가 자연스레 남녀 이야기, 그것두 첫사랑 이야기에 이르게 되었다.

말할수 없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 이다보니...
단지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가며 말없이 듣기만 하였다.
인천 올라오는 털털거리는 봉고차 안에서 난 자장가 같기도 한, 시를 읊어주는것 같기도 한,
내 선생님의 노인이시면서 전혀 노인임이 느껴지지 않는 언제까지나 소년같으신 선생님의
꺼지지 않는 젊음을 느끼며 하나도 빠뜨릴수 없는 이야기, 지긋하고 기운 넘쳐나는 사랑 이
야기만이 하루를 몇날처럼 지낸 고단한 내 귓가에, 내 가슴에 가만히 노래처럼 들릴뿐이다.

(2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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