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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설악에서(2)
작성자 공병임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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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0-01-13 22: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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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30
 

설악에 밤이 찾아 왔다.
아니 어둠이 내린 설악에 우리가 도착한 거였다,
자동차 불빛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계곡의 울창한 숲이 끝없이 이어지며 거대한 짐승처럼 우릴 향해 달려오는 듯 했다.
새벽부터 차에 시달려온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밤을 맞고 있었다. 40대를 훌쩍 넘겨 적당히 굵어진 허리와 나이 살은 있으나 마음만은 소녀 같은 청순함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엊그제 결혼 한 것 같은데 벌써 아이들이 군에도 가고 남편들의 귀밑머리는 희긋 희긋해지고 마치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촌에 사는 친구들은 수박농사를 하는 터라 비닐하우스에서 여름과 가을을 산다. 초겨울이라야 맘놓고 나들이를 한다는 이유로 아마 늦은 일정이 잡힌 모양이다. 햇살에 그을린 얼굴과 거칠어진 손발이 늘 흙일 구며 사는 삶을 말해 주고 있다. 들로 산으로 분주히 일하는 농촌 아낙이 어디 시간이 있어 호강에 겨운 얼굴 마사지를 할 것이며 몸매 관리해 주는 운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시에 사는 친구부인들의 고운 손을 보며 상대적으로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씨앗을 뿌리며 생명을 가꾸는 보람과 그것으로 건강한 식탁을 차리는 행복을 주시지 않았는가 하여 투박한 손이 부끄럽지만 않았다.

동동거리며 살아도 빠듯한 생활에 이런 여유 와 느슨함이 때론 사치처럼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 한 자락이 두고두고 행복할 테니 이런 사치쯤은 누려도 얼마나 멋진 일이랴.

상큼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행에 오른 친구들의 얼굴에서 평화로움과 여유가 묻어난다.
전날까지도 스스로 맘을 옥죄었던 나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오묘한 설악의 풍경에 그저 묵묵히 조물주의 위대함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깊은 계곡 바위마다 지난여름 장마의 흔적이 남아 있어 무섭게 내리 달리던 물살이 느껴졌다. 수 십년은 됨직한 나무도 뿌리째 뽑혀 계곡에 걸쳐있으나 숲은 다시 고요함 속에 말이 없다.

케이블카가 땀흘리지 않아도 산 중턱까지 바래다주어 산행의 목적이 아닌 사람에게는 참 편리한 도구겠지만 ,나는 매번 덩치 큰 쇳덩이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동해안 해안도로를 타고 설악까지 거꾸로 달려온 여행인데 정작 목적지는 설악이 아니라 그냥 여정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동심으로 돌아간 남편들을 좁은 공간에서 함께 대하며 지내보니 천진난만한 모습들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세상살이가 그리 녹녹치 않고 사고나 건강의 이유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도 많지만 지금 모임 점우회 회원들은 그래도 우직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정이 있는 친구들이 라 참 고맙다. 오래도록 이런 우정을 간직하고 천둥벌거숭이적 기억 하나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리운 고향의 친구들 이름을 헤아려 보았다.

지금은 다들 어디에 있을까?

설악산 에 또 발 도장만 찍고 오게 되어 아쉽지만 ,
어떠랴 두고두고 조금씩 아껴 보며 사랑하는 산이면 그뿐이지.
내 그리움의 가을설악을 약속하고 증평으로 향하는 버스는 서서히 계곡을 벗어나고 있었다.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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