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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집살이
작성자 공병임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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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0-01-13 22: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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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2
 

날씨가 추워지면서 성격 급한 어머님의 김장 걱정이 아침마다 시작되었다. 당신의 손으로 가꾸신 20여남은 포기 배추가 다 얼어 버리겠다는 말씀이다.

해마다 큰댁에서 가꾼 배추 무로 50포기 김장을 했는데 올해는 유난히 더 서두르셨다. 며칠 춥다가 풀리면 시간 내서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며칠이 벌써 열흘이 지나고 갑자기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김장을 하려면 마늘이랑 준비할게 많은데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고 결국 냉장고의 먹던 김치마저 떨어진 날이었다.

언 배추로 한 김치 난 안 먹는다. 시며 새벽부터 일어 나서셔 당신이 가꾸신 배추를 탁 탁 소리를 내시며 자르고 계신 거다. 어머님의 급하신 성격 때문에 가끔씩 아들과 싫은 소리를 하시는데 도무지 김장 할 걱정도 안 하는 며느리가 얼마나 미우셨을까. 아침 진지 잡수시라 해도 대구도 않고 언 땅에서 배추만 다듬고 계셨다. 알아서 하겠다는 데도 저렇게 난리를 피우시는 게 나도 못마땅했다.

늘 어머님은 그런 식으로 날 시집살이시키는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어머님 마을에서 소문난 까다로운 분이시다. 비린 것이라곤 멸치도 입에 안 대시는데 하물며 김장에 젓갈을 넣는단 건 상상도 못할 일인걸 어찌 알았으랴. 어머님이 하신 김치는 초봄에나 맛을 내지 영 내 입맛이 아니다. 마늘과 생강 그리고 고춧가루 조금이 양념의 전부 이니까. 할 수 없이 난 친정에서 해주신 굴 넣은 배추김치나 황서가 가시가 숭숭 보이는 고추 김치를 얻어먹곤 했다.


이젠 어머님과 같이 사는 게 십 년이 되어와서 우리 먹을 것 따로 하고 어머님김장 다시 하곤 하는 간 큰 며느리 가 되었지만 하여간 가끔씩 말없이 당신의 위세를 보이시면 얼마나 불편하던지..... 그렇지 않아도 친정엄마가 우리 먹을 김치 다 담아 놓았으니 다녀가란 전화를 받은 터라 몇 포기 안 되는 채마밭의 김장은 시간 있을 때 할 요량이었는데 어머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다. 점심까지 거르시며 찬물에 배추를 씻어 절이시더니 숨도 안 죽은 배추를 허옇게 버무리시고 계셨다. 결국 어머님 혼자 김장을 하시고 난 청국장 포장 때문에 작업실에서 하루종일 있는데 딸이 바빠서 못 오는 것 같으니까 친정아버지가 쌀이랑 김치를 싣고 오신 거다.

지난번 보다 더 야위신 아버지는 허리 아프지 않게 일 조금씩 하라 시며 차만 드시고 서둘러 가신다. 사돈어른이 계시니까 불편하기도 하시지만 시집보낸 지 20년이 넘은 딸을 위해 늘 김치나 쌀. 따위를 실어다 주시는 당신의 사랑표현이 유난스러울까봐 조심스러우신가 보다. 친정부모님 생각이 내 아이 군에 보내놓고 더욱 쓸쓸하게 다가왔다. 날 시집보내시고 지금의 나처럼 추운 날, 맛있는 것 먹는 날, 아니 때때로 그리워하셨을 것을 짐작했다.

아버지의 차가 멀어지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도 한 움큼의 약들을 드시며 쇠약해진 육신을 보듬는 아버지가 내 곁에 계신 것이 고마워서.

사실 시집살이란 게 별거 아닌 것이 하루종일 일에 시달리다 아무렇게나 거실에 누워 신문을 읽는 작은 시간. 때로 설거지 미루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도 어머님이 계시면 얼마나 불편하던지 뭐 그런 것들이다.

입장을 바꿔보면 어머님도 내가 있어 불편할 때 많았을 테지만 이렇게 오늘아침처럼 당당하게 시위하신 적이 많지는 않았다. 잘해드려야지. 내가 시어머님께 잘하면 우리 올케가 우리 엄마 아버지께 잘 해드릴테지 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배시시 웃으며 어머님께 초정에 목욕하러 가시자고 말씀 드렸다.

어쩌면 난 지금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어머님이 우리를 데리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이다음엔 그렇게 유난하시던 모습도 그리울 때가 있을 테지.

날 길러 시집보낸 친정엄마보다 미운 정 고운 정 담뿍 들어 더 오래도록 같이 살 어른 인 것 을..............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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