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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포리 연가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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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8
 안개에 휩싸인 아침이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미로같은 어둠.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이 황홀하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지만 우린 관광차를 대절하고 길떠날 채비를 하고 있기에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이 모두 차에 오르고도 한참 뒤늦게 "저벅 저벅 " 저 만큼서 움직이는 물체가 보이고 이젠 다 오셨으니 출발한다는 기사의 안내가 이어졌다. 그분이 자리를 정해 앉고 나자 미경이 아줌마가 이렇게 말해줬다. "저분 별명이 왕백이 산신령인 거 모르지?" 그러고 보니 아저씨 머리가 새하얗다. 산신령이란 말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사실은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친정의 산 이름이 반가워서 자꾸 웃음이 났다.
" 왕백이". 그이름속에 꿈틀대는 기를 느낄 것 같은 산 이름. 친정 마을을 끼고 웅장하게 둘러선 산이 왕백산 이 였다. 그 산에는 백로가 떼를 지어 살아서 멀리서도 푸른 숲과 하얀백로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다들 어디로 떠났을까?

대포 리의 옛이름은 한 개네(한 그네) 다. 마을 앞으로 커다란 개울이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고 전해진다. 남양 홍씨의 집성촌으로 홍촌말 이라고도 불렸는데 기름진 뜰 과 강을 앞자락에 깔고 삼태기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은 늘 온화한 기운이 감돌곤 했다.

이젠 이천이 시가 된지가 오래고 더불어 대포 리가 대포동으로 바뀌었지만 어딘가 바닷가 포구의 한 지명처럼 바다 냄새가 나던 이름. 아마도 아주 옛적에는 그 냇가에 소금을 실은 나룻배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땅 이름에도 팔자가 있다고 어느 날 친정마을 미륵댕이에 비승 부대라는 공군 기지가 들어섰다. 매일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포를 장진해 둔 것이 대포동과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모자 쓴 돌부처가 모셔져 있어 신비하고 엄숙했던 그 골짜기가 이젠 군인들로 가득하다.

.대포 리의 매력이라면 마을 입구에 두줄로 심기운 소나무 길을 꼽는다. 옹이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등굽 은 노송이 말없이 나그네를 반기는 곳. 그 솔향 은은한 길을 거쳐야 마을에 닿는다. 사철 푸른 소나무를 심은 데는 깊은 뜻도 있지 않았을까? . 올곧은 맘과 기백으로 후손들이 살아가길 바라셨으리라. 소나무의 매력은 흰눈이 쌓인 겨울이라야 돋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겨울같이 혹독할 때 오히려 강인함을 보여주라는 묵시처럼 다가온다.

마을 위 제일 높은 곳에 예배당이 이젠 현대식 건물을 자랑하며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도 교회 사택의 유리창은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아했던 곳 이였다. 전도 할머니가 언제나 수술한 내 허리에 손 얹고 기도해 주시던 곳. 그래서 일까 그 후로 한번도 허리가 아픈 적 없다.

버스가 주막거리를 지난다 술 좋아하신 할아버지를 모시러 가끔 가본 막걸리 집 뒷마당. 허름한 영양탕 집 으로 변모해 있다.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고 그곳에서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곳이다. 처음으로 엄마를 떨어져 읍내에 자취방으로 가던 날 아버지는 버스에까지 오르셔서 연탄 가스 조심하라고 하셨었다. 오래 전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딸과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 병원 비로 헐값에 파신 땅에 비닐 하우스 단지가 들어서 있다. 저 넓은 뜰에서 땀과 눈물로 가꾼 곡식이 우릴 키운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흙으로 돌아가신 내 핏줄의 당김을 햇살에 스러지는 안개 속에서 뭉클하게 느껴진다. 두렛물. 똘개. 장괭이등 골짜기 들 이름이 아직도 변함 없이 불려지고 그 속에서 다시 한세대가 생명을 키우고 있다.

참나무 숲이 우거지고 왕벌이 윙윙대던 엉구리 고개의 도토리 줍던 곳. 광식이네 집 뒷산은 벌목으로 숲의 형태도 사라진지 오래고 광식이네 식구들도 서울로 이사한지 오래 되었단다.

이젠 남양 홍씨들말고 타성이 더 많아진 마을.
그래도 명절 에는 오후가 되도록 두루마기입고 집집마다 차례 드리러 가는 씨족이 사는 마을. 대포리 연가를 부르려니 나를 키워주던 들녘의 바람 냄새 가 갑자기 코끝을 시큰하게 한다.





2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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