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게시판
  2. 수필뜨락

수필뜨락

수필뜨락 입니다.

게시판 상세
제목 폭풍 그후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26:01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111
 우리 집 마당은 지금 모내기하기 위해 써레질 한 논바닥 같다.
아니. 거머리까지 군데군데 헤엄치면서 아주 신명나 있다. 밤새 비바람이 퍼댄 아침의 풍경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만큼 기가 막혔다.
증평은 태풍 매미 때도 고요하게 지나갈 만큼 천재지변에 안전 한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다르다. 주일 저녁 예배 때도 간간이 뿌리던 빗줄기가 내가 피곤에 죽은 것처럼 잠자던 밤엔 광장 했나보다. 온통 물과 뻘밭이다. 산허리가 잘려져 나가고 강둑이 터진 건 말할 것 도 없고 피학골의 마지막 보루인 우리 배나무 밭과 창고가 버팀목을 단단히 했다.

어머님의 감자밭이 자갈로 뒤덮이고 고쟁이만 입으신 어머님은 자갈밭에서 감자를 골라내고 계셨다. 흙을 퍼낼 때마다 지렁이가 꿈틀대고 있어 난 감자밭에 서성이지도 못하지만 정말 마당에 헤엄치는 거머리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물 고인 곳으로 찾아드는 동물적 후각이 놀라웠다.
시간이 가도 빗줄기는 잦아들지도 않아 우린 밑에서부터 녹아 앉는 소금 가마와 씨름해야 했다. 물 젖은 소금이라니......... 하필이면 올해엔 예년에 비해 더 많은 소금을 준비해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소금 자루를 들어올리지도 못하고 땀범벅된 아들과 남편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지난봄 많이 사면 싸게 주겠다는 염전 사장님의 말만 듣지 않았어도 이렇게 식구들 고생시키는 일은 없을 터였다.
무얼 먼저 해야 하는지 모를 만큼 무력감이 몰려왔다. 발걸음을 떼 놓을 때마다 뻘흙이 진드기처럼 붙으며 따라 다녔다. 울고 싶었다. 하루해가 다 가도록 삽질을 했는데도 창고엔 여전히 흙더미만 분분했다. 모든 것을 잃은 것도 아닌데 그까짓 창고에 물찬거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슬그머니 오기가 생긴다.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은 얼 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제 잘난 멋에 살지 않았던가. 논이 다 자갈로 덮인 새골 에는 발빠르게 포크레인이 와서 흙을 퍼내고 있고 어디서 구했는지 뒤따라가며 모내기하는 사람도 있다. 허망하여 주저앉지 않고 저렇게 열심히 복구에 임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서서히 잦아드는 흙탕물로 보아 이제 는 안심해도 될 듯 싶다. 마당에서 물살에 떠내려간 판넬을 둘이서 간신히 들어 올리며 물살의 세기가 짐작이 되었다.

무슨 일에든 감사하다는 사람이 있었다. 차 사고 가 나도 그나마 많이 다치지 않은 것 감사하고, 강도를 당해도 내가 강도 아닌 것이 감사하고, 이렇게 폭풍에 그동안 땀흘린 것 다 잃어도 매일 태풍이 오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오는 것이 감사하고.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 참 멋지게 들리는 저녁이다.

첨부파일
비밀번호 수정 및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관리자게시 게시안함 스팸신고 스팸해제 목록 삭제 수정 답변
댓글 수정

비밀번호 :

수정 취소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댓글 입력
댓글달기 이름 : 비밀번호 : 관리자답변보기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확인

/ byte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 상품검색

    상품검색
  • 장바구니

    장바구니
  • 주문조회

    주문조회
  • 인스타

    인스타그램
  • 블로그

    블로그

BANK INFO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핀터레스트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