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게시판
  2. 수필뜨락

수필뜨락

수필뜨락 입니다.

게시판 상세
제목 몽유병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25:32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108
 

오늘도 살그머니 일어나서 가방을 챙겨들고 고양이 걸음으로 집을 나와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자명종이 울리기 5분전에 스르륵 깨어주는 잠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새벽마다 하는 일인데도 방문을 나설 때마다 남편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게 좀 거북스럽긴 하지만 난 요즘 남편의 말처럼 몽유병이 단단히 들었다.

사실 이렇게 몸이 알아서 자는 시간마저 자로 잰 것처럼 시간을 챙겨주기까진 마음고생을 많이 해야 했다. 밤을 며칠씩 세우라면 그건 할 수 있지만 일찍 일어나는 건 내게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결단의 시간을 갖고 하룻밤에도 수십 번씩 소스라치며 일어나길 반복한 다음에 얻어진 습관이다. 시골의 교회라, 아니 담임 목사님이 전통을 따른다고 새벽기도회를 4시에 고정한 것이 문제였다. 꼭 세시 반에 일어나야 20분 걸어서 교회에 닫는다. 차로 가면 5분 거리를 운동하는 셈치고 걷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앞집의 우 집사님이 계시니까 동무도 되고.

겨울의 새벽은 한밤중처럼 깊은 잠에 빠져있다. 노신이 쓴 야송(夜頌)이란 글에는 밤을 참 멋지게 표현했다. '밤을 사랑하는 사람은 고독하고 한가롭고 겁 많고 광명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대낮과 한밤중, 햇빛 아래와 등불 밑에서 언제나 다르다.'
'밤은 조물주가 손수 짜 만든 그윽한 하늘 옷으로 사람들을 모조리 두루두루 덮어 따뜻하고 포근하게 한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인간이 만든 가면과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이 끝없는 검은 솜 같은 크나큰 덩이에 싸인다 '라고.

밤 같은 새벽길을 걷다보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숲의 고요가 있고 정적이 있다. 모든 언어로부터 자유로운 숨소리만 들린다. 전우익 선생님은 산마다 들어선 수많은 나무들이 소리 없이 한평생 사는 것과 저수지에 들어찬 어마 한 물이 조용한 걸 보고 말을 넘어선 말을 한다고 했다. 새벽을 깨운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정물처럼 새벽의 일부분이고 싶은 것이다

희뿌연 가로등 몇 개 졸고 있을 무렵 보무도 당당하게 한적한 차도를 걷는다. 예배랑 기도의 순서까지 다 마치고 집에 와도 다섯 시가 좀 넘으니 달리 할 일이 없어 다시 한숨 자는 것이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몽유병 환자다. 자다가 말고 돌아다니기가 다시 잔다나. 그건 점잖은 표현이고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맥없이 뒤척이는 날이면 캑하는 소리가 방문으로 나온다. 그럼 난 얼른 어머님 방으로 들어가 모른 척 하고 다시 곤한 잠에 빠지는 것이다. 마누라가 좀 야속해도 힘들면 제풀에 그만 두겠거니 하면 되지 꼭 그렇게 히틀러 흉내를 내셔야 하냐고 기분 좋은 날은 따져본다. 미명에 걸어서 다소곳이 성전 마루에 엎드려 기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그이가 알까? 내 소박한 기도는 자꾸만 더해지는 기도의 제목을, 그리고 기쁨을 같이 공유했으면 하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아이의 방으로 가서 자는 녀석의 머리에 손 얹고 속삭이듯 기도를 올린다 그러면 큰놈은 자면서도 '아멘' 하고 작은 놈은 잠결에도 내 가슴을 더듬는다. 내가 뽑은 대통령이 임기까지 건강하여 원 없이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해달라는 기도도 잊지 않는다. 한날의 생활에도 행복한 마음을. 감사한 생각을 갖자고 다짐도 해보며 원하기는 내 몽유병이 오래 오래 치유되지 않았음 하는 것이다

첨부파일
비밀번호 수정 및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관리자게시 게시안함 스팸신고 스팸해제 목록 삭제 수정 답변
댓글 수정

비밀번호 :

수정 취소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댓글 입력
댓글달기 이름 : 비밀번호 : 관리자답변보기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확인

/ byte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 상품검색

    상품검색
  • 장바구니

    장바구니
  • 주문조회

    주문조회
  • 인스타

    인스타그램
  • 블로그

    블로그

BANK INFO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핀터레스트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