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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병임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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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0-01-13 22: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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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7
 

가을이 온몸으로 수를 놓으며 햇살을 익히고 있다.
무심히 들여다 본 화장대 달력엔 오늘 날짜 위에 별표를 하고서 결혼기념일이라고 적혀있다.
새해아침에 적어둔 기념일 표시인가본데 어느새 17년을 살았나 하는 놀라움뿐 무덤덤 하기는 나도 그이를 닮았나 보다. 여느 날처럼 매장으로 나와 청소를 하고 신문을 보고 있는데 남편이 왔다.

'눈닫고우리 어디갈까?' 아무렇지도 않게 그이가 물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그냥 놀러 가잔다. 아무튼 분위기 없는 그이의 무표정한 말에 난 금새 얼굴이 환해졌고 어린애처럼 샐샐 웃음이 나왔다. 가까운 조령산이나 가잔다.

내가 가을 내내 속으로만 외로워했던걸 그이가 알았을가?

상점의 문을 잠그며 옆집으로 가서 나 오늘 여행가는 거라 했더니 커다란 단감을 몇 개 넣어준다. 칸소네 테이프를 골라 틀고 갑자기 멋이어 보이는 남편의 볼에 뽀뽀도 하고 그렇게 가을 속으로 유유히 떠났다.

아삭거리는 감의 단맛이 혀끝으로 전해 오는 게 너무 맛있어서 하나 더 먹으려 하자 그이가 말해다. '이 사람아 변비 걸려' '에공' 멋없기는 하필이면 거기서 왜 변비 이야기가 나온담.

문경 쪽으로 가는 길엔 온통 사과 과수원뿐이다.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서 달콤한 향기를 뽐내고 있고, 가로수로 늘어선 쭉곧은 은행나무는 샛노랗게 웃고 있었다.

이 멋진 풍경. 11월인데도 이곳은 늦가을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우릴 맞고 있었다.

봄의 산과 가을의 산이 이렇게 맛이 다르다. 안으로만 삭이면서 떠날 채비를 하는 ,그리하여 너무 고와서 설운 단풍잎이 하나 둘 날리고 있는 그 풍성한 가을 길을 투박해진 손을 잡고 걸었다. 신혼여행 이후 처음 인 것 같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단체 관광객인 듯한 사람들이 자꾸 우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이다. "혹시 애인 사이라고 의심하나 늙은 신랑이 예쁜 각시를 데리고 다니니까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인 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놓는다. 엊그제 결혼 한 것 같은데 어느새 남편의 머리엔 새치가 눈에 띄게 늘었다.

17년전 감히 아버지 앞에서 결혼 이야길 꺼낸 날부터 내눈엔 눈물이 마를 날 없었다. 사랑 때문인지 그리움 때문인지 아니면, 혼자 목장에서 밥해 먹는 다는 그이의 말에 연민의 정 때문인지 모를 그 무엇이 날 눈물에 젖게 했다.

결국 아버진 22살 어린 딸의 눈물에 항복하셨고 당신은 더 많은 날 가슴으로 울었다고 하셨다. 결혼이 어린애 소꿉놀이 인줄로 아는 철없는 딸을 5살 많은 산골의 청년에게 데려다 주시고 불면으로 아파했을 날들. 그렇게 힘든 출발을 했을 데도 우린 간간이 의견이 맞지 않았고 그래서 난 속상 하다고 문을 닫고 울었었다. 무심한 시간이 많은걸 깨 닿게 해 주고 말없이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줄 아는 40대가 훌쩍 넘어 버린 것이다. 가끔 이런 나들이도 우릴 가슴 설레게 하는 데 그동안 너무 무심히 살았다.

짧은 산그늘이 비탈진 사과 과수원으로 기울 때 온천을 갈 요량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내 말엔 대꾸도 없이 오솔길로 접어든다. 한참을 가도 건물은 없고 웬 통나무집만 여러 채가 있다.
난생처음 그이가 초대한 소나무 향기 나는 통나무집에서 숲속의 공주처럼 마법에 걸린 하루 였다.
19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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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2005.01.26-01:45 | 삭제
소윤님 '우리 문닫고 어디갈까.' 이 한마디 속에 믿음이 듬북
초대 받은이는 얼마나 감미롭고 어찔하셨을까. 얼마나 좋았는지 마지막은 소개조차 못하시네요. 멋진 글에 매로 되다가 크리라이막스를 보지 못하고 떠납니다.




2005.01.28-21:1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머지는 상상에 맡김니다.
결혼 하고서 이런초대 손가락에 헤아려야 하는건지, 아님 이후로 없는 건지 저 다른 초대를 기다리고 있는데 영 소식이없습니다.




하얀세상 2005.09.19-14:37 | 삭제
착각은 자유 " 늙은 남편에 이쁜 아내"
22살 나이에 아버지의 마음을 어찌 헤아렸을까
고집장이 순정만화에 나오는 계집애였겠지 ㅎㅎㅎㅎㅎㅎ
좋은나 싫으나 선택한 것에 만족함에 살아 갈수 밖에 없는 그대의 마음을 헤아리겠네요
죽을때까지 가능한 일인지 모르지만 세상에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
인생은 연습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기회는 지금도 있지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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