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갔던 큰애가 위로 휴가를 온단다.

푼수 댁처럼 눈물이 먼저 고이고 그 애에게 무얼 해 먹일까 요리 책을 뒤적였다, 아니 . 그것보단 아이를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지 담담한 척 하려해도 자꾸 고샅으로 귀가 기울어진다.

그 녀석과 딱 한번 떨어져 본 적이 있다. 연년생으로 작은 애를 낳았을 때 친정엄마는 산후조리를 일주일 해주시곤 천방지축인 녀석을 데리고 가셨다. 친정 집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홀아비처럼 계셔서 철없는 딸이 갑자기 두아이의 어미가 된 것이 못내 딱하다 하시면 서도 가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할머니 품에 딱 안겨서 천연덕스럽게 내게 빠이빠이 를 하던 녀석. 그때 날마다 녀석이 보고 싶어서 겨우 열흘이 못되어 아이를 데려오게 했다.

자식을 두고 집나 가는 여자를 난 절대 이해 못했다. 그렇게 잠깐 이후 첨으로 녀석은 집을 떠나게 된 것이다. 군인이란 자랑스런 이름으로.

날마다 눈물이 났다. 보고싶어서 견딜 수 없어도 했다. 식탁에 앉을 때마다, 텅빈 녀석의 방을 그냥 무심코 열어보기를 버릇처럼 했다. 전시도 아닌데 그리고 누구나 가는 것인데 왜 나는 이렇게 담담하지 못한지 눈물은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지 정말 주책이었다.

녀석이 엄마를 부르며 뛰어왔다. 아이를 품에 안은 것이 아니라 녀석이 나를 앉았다. 신고부터 해야 한단다. 건장한 모습으로 새카만 얼굴에 목이 메인 휴가 신고를 내게 했다.

살아가면서 휴가를 맘껏 누릴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녀석은 백일이면 가족을 만난다는 기다림으로 혹독한 시련을 이겼을 테고 , 나도 그 애를 보기 위해 달력의 날짜를 세고 있었다. 아이의 친구들이 방으로 하나가득 모여 훈련소에서의 이야기를 영웅담 처럼 듣고 있었다.

군복이나 모자를 돌려가며 쓰고서 머지 않아 경험할 군 생활을 겁먹고 듣고 있는 게 재미있다.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시원한 사이다를 먹으려 했단다.

삼복더위에 입대한 그들에게 마른 먼지 풀풀 날리는 연병장과 뜨뜻한 물 한목 금이 젤 괴로웠다나. 하루는 한 줄로 서서 물먹을 차례를 기다리는데 제 앞의 동료가 물을 서너 모금 먹었다고 물 담긴 통을 다 쏟게 하고 병아리 오줌만큼의 물을 주더란다 .물이 먹고 싶어 쓰려지려는 상황인데.. 그때 그 조교를 사정없이 패주고 싶은걸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마도 걱정하는 가족이 없다면 흠씬 두둘겨주고 탈영하고 싶더라나...

눈물범벅의 밥을 몇 번이나 먹었을지 나는 안다. 유난히 까다로운 녀석의 식성과 깔끔 떠는 습관 때문에 샤워도 맘놓고 못해 괴로움을 당했을지 말 안해도 짐작한다. 4박5일이 금방 지나갔다.


겨우 한 두끼만 집에서 먹고 무엇이 그리 바쁜지 오붓하게 모자간의 대화도 못해보고 아이를 보내야 했다. 이제 좀 담담해지려는데 떠나는 녀석은 다시 거수 경례를 내게 했다.

울컥 눈물이 앞을 가리고 그렇게 매정한 시간은 정확하게 아이앞 에 와있었다.

늘 일에 파묻혀 사는 내게도 딱 일주일만 휴가를 주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도 만나고 ,쓸쓸한 바다고 가보고, 목적지 없는 기차 여행도 하고 싶고. 사는 게 무슨 그리 대수냐고 말없이 여행가방을 챙길 간 큰 생각도 문득문득 해본다.

차 한잔의 여유도 없고 , 밤을 하얗게 세워 고민에 빠져보지도 않고 이렇게 대책 없이 시간만 붙들고 산다. 나도 조건 없는 휴가를 한번 만 쓰고 싶다. 간절하게. 2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