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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촌댁 장 담그기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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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9
 

부드러운 깃발처럼 따스한 눈발. 그것은 겨울의 마지막 잔치인듯,때늦은 함박눈 속에서도 아스라이 피어나는 봄을 본다.

텃밭 과원에 살구나무와 앵두나무, 배나무의 겨울 빈가지가 휘청하도록 쌓인 눈은 그대로 탐스런 하얀 눈꽃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 내린 풍경에 푹 빠져들게 하는데는 우리 집 장독대 만한 것도 없으리라.

도열중인 병사들처럼 나란히 늘어선 백여 개의 장독 위에 새하얀 눈은 고즈넉한 산촌의 아침과 함께 한 폭의 수채화로 피어난다. 정월 대보름을 넘기고 아직도 산자락에 잔설이 분분해도 24절기 중 입춘이 되면 우리 집 넓은 마당에서 잔칫날처럼 동네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담 그는 행사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그 첫날은 독을 닦고 소독하는 날인데 우리는 그 날을 남편이 불퍼머 하는 날이라고 우스개 말을 했다.

커다란 독에 매달려 볏짚을 태우다가 엉겁결에 앞머리를 태운 그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보기만 해도 우스워서 붙여진 별명이다. 항아리마다 매캐한 연기를 피워 묶은 냄새가 없도록 볏짚 태우기를 하는 것도 온종일 걸린다. 그런 후에 산더미처럼 꺼내온 메주를 씻어 담고 알맞은 소금물에 고추 서너 송이, 대추 한 움큼, 빨갛게 달군 숯을 피워 넣는다. 남편은 참숯을 쓰기 위해 지난 겨울 뒷산에서 참나무를 베어다 몇 날씩 숯가마에서 구웠다.

사실 나는 장담그기는 엄두도 내지 못해서 결혼해서 얼마동안도 시어머님이 담아주셨지만 이제는 그 솜씨를 전수 받아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장을 담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가을에 거둔 콩으로 가마솥에 장작불로 푹 삶아서 메주를 쑤어 온 겨우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바쁜 생활과 여건이 전통적으로 담아오던 장문화까지 변화시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숙성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햇빛과 바람을 쐬어야 하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한 해의 장맛을 다 버리게 되는데 그 일을 즐겨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인 들이 놀러 오면 서툰 솜씨로 만든 우리 집 된장찌개 맛을 못 잊는다는 것이다. 특별한 솜씨도 아니건만 정말 맛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 집의 자연적 조건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숲으로 우거진 뒷산과 늘 콸콸 솟아나는 맑은 지하수, 사계절의 햇살이 가득 고여 흐르는 듯 머무는 마당이 있기에 그 맛을 내는 것이 틀림없다. 또한 이른 봄 노란 산 동백 향기를 시작으로 조팝나무 꽃이며 뻐꾸기 소리, 샛노란 송홧가루까지 항아리 가득 스며 장맛에 어울린 것은 아닐는지...

산자락에 산다고 내 스스로를 산촌 댁이라 자칭했는데 장 맛있다는 소리에 신바람이 나서 나는 그쯤부터 콩값 내고 장담아 가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말이 씨가 된 것이다. 이제는 아예 장담는 일이 본업이 되었으니 말이다.

장 담기를 끝내고 늦은 점심은 온통 푸성귀로 가득한 밥상에 된장찌개뿐인데도 꿀맛 같다고들 한다. 북적대던 사람들이 돌아가고 이제부터는 나 혼자서 그 많은 독들을 다독인다.

키 작은 항아리도 몇 게 섞여 분위기에 썩 잘 어울리지만 대부분의 독들은 섬지기가 넘는다. 백여 개가 넘는 독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저 볼품 없이 투박하고 닮은꼴 하나도 없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이것들은 각기 다른 고장에서 3,4대식 대물림하면서 고유의 장맛을 익혀내던 것들로 보물 같은 소중한 독들이다.

장을 담그는 것은 내게 있어 소박한 일상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면면이 이어오고 또 이어주어야만 할 사명감이지 않을가. 독안의 장들이 숙성되는 과정을 보며 투박한 옹기 속의 장맛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함께 있고 싶은 그런 사람 말이다.

머지않아 소리 없이 봄이 찾아 들면 살구꽃 배꽃이 한창 피어 앞뜰에 어우러지고 햇살 가득 않은 독에서는 산촌댁 솜씨의 장들이 수런수런 맛나게 익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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