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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골 가는길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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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5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그랬다.
숨이 막힌다는 말이 그처럼 어울릴 수 있는 메밀밭 가운데 나는 지금 서 있다. 산자락에 숨어있어 도무지 상상도 못했던 메밀꽃을 새골에서 만나고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어서 그만 숨이 막혔다.

이곳은 선주네 김장 밭이 있는 곳이다. 해거름이면 땀에 흠뻑 젖은 선주엄마가 휘적휘적 들에서 오면서 새골 갔다 온다던 그 밭이다. 그녀는 내세울 것 없는 종가집종부로 셀 수 없는 윗분들의 봉제 사를 모시며 몇 마지기 종답으로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 나간다. 새골밭도 그 중의 하나인데 늘 밭이 멀어 힘들다고 햇었다. 주사 심한 남편과 싸워 가슴에서 갈바람 소리가 나는 날은 새골 밭둑에 앉아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인적 드문 이곳에서 신세 한탄을 하며 김을 매고 있으면 산새들의 노랫소리에 어느새 인가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된단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그녀는 이 밭에 김장 씨를 넣고 와서는 언제 나물 솎으러 같이 가자고 햇었다. 아마도 이즈음일 게다 할아버지가 샘막을 지으셧던때가.

개울 건너 논둑에 지은 키작은 샘막은 우리들이 놀이터 이었었다. 허수아비 위에서 놀고 있는 참새와 숨바꼭질 하다가 졸음에 겨우면 할아버지 가슴에 손을 넣고 잠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장괭이 뜰까지 온통 붉게 물들인 저녁놀에 취해 신비한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었다.

벼이삭이 튼실해진 논둑으로 접어드니 재잘대던 참새들이 우르르 굼벵이 아주머니의 논으로 날아든다. 아직도 할아버지의 체취가 남아 있을 듯한 샘막이 여기 어디쯤 있을 것같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논두렁길을 벗어나 한참을 가면 미영이네 담배 밭이 있고 그러고도 삼보산 절이 코앞에 보이는 산중턱까지 왔다. 새참을 이고 이렇게 먼 밭을 두어 번 다녀가면 저녁엔 한발자국도 옮길 수 없을 만큼 다리가 천근이란다.

속내를 털어놓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롱이를 돌아서는 데 갑자기 눈부신 꽃밭이 거짓말처럼 쫙 펼쳐진 것이다.

새하얀 꽃송이가 끝도 없이 피어나 살랑 이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수줍은 듯 춤추고 있었다. 메밀꽃이란다. 세상에 ! 내 언제고 봉평에 가서 메밀꽃을 보리라 했었는 데, 메밀밭을 산모퉁이에서 만나고 그 황홀함에 그만 숨이 멎은 것처럼 할말을 잊은 것이다.

계집과는 연분이 없는 허생원도 달빛에 젖은 메밀꽃 핀밤의 첫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애틋한 사랑을 맺은 가을밤의 메밀꽃이 전설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곳부터는 이제 길이 없다.

순전히 메밀꽃 이랑을 손으로 헤쳐야 김장 밭에 닿는 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순백의 꽃을 배경으로 가련한 주인공이 된듯한.

꽃 밭가운데를 걸어나오니 파릇한 배추와 무가 나란히 키재기를 하며 크고 있다 손톱 끝이 여물 날 없이 김을 매고 땀을 쏟은 주인의 마음은 무럭무럭 커주는 곡식을 바라볼 때 얼마나 행복할까?

누구도 흉내 못 낼 생명을 가꾸는 농부의 마음이 몸으로 느껴진다. 그녀의 숨소리를 듣고 자란 여린 배추도 솎고 밭둑으로 가지를 뻗은 노란 동부도 몇 꼬투리 따고 나니 금방 바구니가 가득하다.

가을을 따 담은 바구니를 들고서 내려다 보는 새골 뜰에서는 잠자리 가 무리 지어 낮게 춤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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