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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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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0
 

이른 아침 뜨락에 서면 앞산이 먼저 단아하게 눈에 들어온다. 칼바람 부는 날은 윙윙거리며 맞서다가도, 밤새 함박눈이 온 날은 새색시처럼 수줍게 새하얀 세상을 맞고 있다.


마을 회관 앞의 늙은 느티나무는 정월 대보름 천신 제때 쳐놓은 금줄을 아직도 허리춤에 감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견딘 가슴 시린 느티나무는 가랑잎 스치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했을까! 해거름 긴 산그늘에 들 때까지 마을은 덩달아 침묵한다.

나는 이런 고요가 좋다. 질긴 생명의 씨앗을 보듬고 언땅 밑에서 무던한 기다림으로 겨울의 끝자락과 마주한 모습. 그런 날 난 먼지 쌓인 항아리를 꺼내 놓는다. 장담는 날을 위한 나의 첫 번째 봄맞이 준비 랄까. 노루 꼬리 만한 햇살에 메주도 정갈하게 씻어 채반에 널어놓았다.


올해는 메주를 친정 고모님이 띄워 주셨다. 조카까지 생각하신 ,그분의 모습이 메주를 손질하며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이다음에 나는 무엇으로 이런 사랑의 빛을 다 갚을 수 있을까? 메주를 만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손길과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는 걸 나는 안다. 가을걷이 끝내고 튼 실한 콩을 골라 바깥마당에서 불을 지펴 진종일 콩을 삶으셨을, 등급은 내외. 그분들의 정성 이 장맛에 어울리리라.


볕잘드는 장독대를 서성이다 보니 옆집의 토종닭 한 무리가 우리 도라지 밭에서 모이 줍기에 열중이다 .그 중엔 제법 위엄 있어 보이는 수탉도 있었는데 새까만 꼬리털이 멋지게 생겼다. 수탉을 볼 때마다 작은아이가 어렸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거름 밭에서 놀던 수탉을 처음 본 아이가 놀라 뛰어 와서는 독수리가 왔다고 호들갑을 떨었었다. 얼마 있으면 노란 병아리를 데리고 봄나들이 오겠지. 하늘하늘한 솜털 병아리는 보기만 해도 앙증맞아 뜬금없이 올 봄엔 병아리를 기르고 싶어진다.
세찬 눈보라를 견딘 나목의 가지에도 한 줄금 순한 햇살이 보듬고 있다. 어느새 배나무 가지치기도 서둘러야 될까보다. 더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한 제 살 자르기. 그런 아품뒤에 수많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산고 가 있다. 배꽃의 고고함은 결코 어디에 비길 수 없다. 무르익은 봄밤의 정취는 순백의 꽃으로 하여 더욱 눈부실 테고......
건너말 장지에 갔던 남편이 앞머리와 눈썹까지 부스스 그을린 채로 왔다. 꼭 폭탄 맞은 머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웃음이 나왔다. . 아직도 들녘엔 바람이 꽁꽁 언다고 했다.
어느새 해거름인지 지난해 중학교에 입학한 큰아이가 온다. 장난꾸러기 녀석이 헐렁한 중학교 교복을 입고서 인사를 할 때면 무척 귀여웠는데, 이젠 교복 입은 모습이 썩 잘 어울린다.
2월이 가면 마을 초등학교앞 길에도 손 번쩍 들고 길을 건너는 일 학년들이 눈에 뛸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설 봄을 위한 서곡 .
고요에 빠졌던 마을이 다시 하교 길의 아이들로 떠들썩해 진다.

짧은 2월의 해는 늠보산 중턱에서 한숨을 고르고 있다.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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