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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꿈꾸는 상점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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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7
 

우리 집 거실 벽면엔 짚신 한 켤레가 걸려 있다. 그 짚신은 오랜 날들을 아무런 꾸밈도 없이 그저 그 모습으로 훌륭한 장식이 돼 준다.

그것은 오래 전 남편의 외 할아버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다. 햇볕이 따 사한 어느 봄날 할아버님은 동태 몇 마리를 손수 사 가지고 우리 집을 오셨다. 할아버님은 연세가 90을 넘으셨는데도 홍안의 얼굴 이셨고, 평안도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로 성격이 호탕하셨던 분이다.

할아버님의 예전의 솜씨를 어머님께 들은 남편이 욕심을 내어 무언가 한가지 만들어 주시길 부탁 드렸었다. 할아버님은 흔쾌히 손쉬운 짚신을 삼아 주신 다며 '나 없더라도 날 본 듯 하거라'하시는 말씀과 함께 삼아주신 것이다. 나는 그냥 짚신이라는 옛 물건으로 별 뜻 없이 벽에 걸어두었는데, 그해 가을 문경 새재를 갔을 때다 .

새로 지은 박물관 한 쪽 벽에 온통 크고 작은 짚신들이 걸린 채 여행객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먼 여정에 발길이 지쳤을 선인들의 숨결이 닳아버린 짚신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짚신을 신을 수밖에 없는 구차한 살림이었겠지만, 짚신이야말로 요즘처럼 가죽 신발에 갇혀 혹사당하는 발에 비해 가장 자연과 가까운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로 가끔 짚신에 눈길이 마주칠 때면 생전의 할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모든 일에는 우연찮은 인연이 있는 듯 짚신을 삼아주신 몇 년 후 생각지도 않은 신발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생긴 우연한 버릇이 하나 있는데, 사람을 만나면 얼굴을 보기 전에 신발에 먼저 시선을 주고 내 맘대로 그 사람의 취향까지를 상상해 보는 이상한 버릇이다.

처음 이 상점을 시작할 무렵 무던히도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다. 세상물정도 잘 모르고 소만 키웠던 나 같은 촌사람이 장사를 할 수 있을지. 그러나 그것은 열 평 남짓한 공간에 갇혀 답답함을 못 견뎌 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 아님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뙤약볕 아래서 땀이 범벅이 되어 일 할 때는 시원한 상점에서 깔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럽기도 했었는데, 들로 산으로 맘대로 누비다가 갑자기 한정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내겐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어떤 일에나 야물지 못한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찾아오는 현대판 방물장사를 거절치 못해 필요치 않은 물건들만 쌓여갔다.

그렇게 햇병아리 시절도 지나 이제 조금 손님의 마음을 알 듯 하니 나도 모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신발 하나에도 오묘한 사람의 심리가 숨어 있는 것 같아 흥미를 느낄 때도 많다. 모양도 색깔도 가지가지인 구두 위의 고운 먼지를 닦으며 이 신발의 주인은 누구일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어떤 것은 구두코가 너무 뾰족해서 동화 속의 일곱 난장이를 떠올리게되고, 어떤 것은 오리 주둥이처럼 넙적 하기만 해 보기에도 우스꽝스런 것도 있다. 이런 것을 사 신을 사람이 있을까 염려해 보지만 임자는 따로 있어 저마다 만족해하며 구두를 골라 신는다.

의리를 저버린 사람에게 헌신짝 버리듯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신발이야말로 고단한 주인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친구이지 않은가? 제 수명을 다해 버려진 헌 신발을 보면 주인의 성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꼭 뒤축을 꺾어서 신는 사람은 성격이 좀 급하거나 답답함을 못 견뎌 하는 경향이 있고, 두 서너달 넉넉히 신을 수 있는데도 새것으로 사 신는 이는 무엇에나 빨리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높은 곳에 마음을 두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내게 주어진 자리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 그 중에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은 것과 같이 세상을 여유 있게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장장이 집에 칼이 없다 했던가.
처음 구두 상점을 열 때는 멋진 구두를 맘껏 신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신발장을 열어보면 유행에서 뒤진 신통찮은 구두 몇 개가 전부다. 그래도 욕심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면 신발집 주인 자격이 생긴 것은 아닌지. 나는 오늘도 구두를 팔며, 행복까지 덤으로 담아 주는 꿈꾸는 상점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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