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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발소 풍경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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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7
 

거리의 가로수가 하나, 둘, 잎새를 떨구기 시작했다,
초겨울의 스산한 바람이 추수를 끝낸 들녘의 볏짚가리를 흩고 지나간다.

산자락에 있는 집을 나서는 일은 언제나 번거롭다. 눈만 뜨면 보이는 산과 나무들 말고 흥미로운 볼거리로 아이들이 천방지축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이들 머리도 깎아 줄겸 일부러 데리고 시내를 나왔는데 미장원이 하필이면 모두 휴일이다. 사내녀석들이라도 늘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이발소를 찾으니 의외로 눈에 띄질 않는다. 시장모퉁이를 돌아서야 겨우 이발소를 찾아 아이들을 앞세우고 들어서긴 했지만 미장원과는 다른 분위기라서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긴 나무의자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던 아이들이 지루했는지 번갈아 가며 수선을 피우기 시작했다. 녀석들 눈에야 신기한 것 밖에 없으니 얼마나 궁금할까. 빈 의자에 올라앉아 뱅뱅 돌기도하고 얼굴에 거품을 잔뜩 바른 아저씨가 우스워 죽겠다고 킬킬대고 , 주인아저씨의 '착하지' 소리를 뒷전으로 흘리며 조용하던 이발소를 번거롭게 만들고 있었다. 녀석들을 붙잡고 앉아 실내를 들러보려니 어디인가 모르게 이 집이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벽에 걸린 눈익은 액자며 거울에 그려진 헤엄치는 잉어 두 마리, 머리를 감겨줄 때 쓰는 작은 조로. 아 맞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면사무소가 있던 단월리 이발소가 꼭 이랬다.

일년에 한두 번 할아버지의 자전거에 실려 단월리 이발소를 간 적이 있었다. 두렘물 고개를 넘어 신작로를 달릴 때 키큰 미루나무가 팔을 흔들고, 전깃줄에 앉았던 제비들이 모두들 단월리 가니? 라고 물었었지. 자전거포집 앞엔 언제나 많은 자전거가 서 있었어. 바람결에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나는 양조장도 지났지. 양조장 굴뚝에선 시커먼 연기가 솟았는데 술밥을 찌는 거라고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어. 구판장을 지나 이발소에 다다르면 할아버지 친구들이 약속처럼 많이 계셨지 .내게 흰 보자기를 목에 둘러 놓고도 어른이 오시면 먼저 깍아 드렸던 다리 절던 이발소 아저씨의 얼굴이 어슴푸레 기억날 듯 하다.

의사 선생님처럼 흰옷을 입고 가죽끈에다 면도하는 칼을 슥슥 문지를 때면 소름이 돋곤 했는데 그때 남동생이랑 지금처럼 긴 나무 의자에 올라서서 창문으로 하늘의 구름을 보곤 했었어. 한쪽 벽에 걸려있는 엄마 돼지와 아기 돼지를 세어보면 꼭 13마리 이었던걸 기억하는데 ,오늘 그때 보았던 새끼 돼지 그림이 정겨운 모습으로 빛 바랜 채 걸려있고, 골동품 같은 등받이 의자가 전혀 불편 없이 사용되고 있는 이발소에 내가 앉아있다.

이발소를 개업한 이래 줄곧 이곳에서 사셨다니 정년을 훨씬 넘기셨을 아저씨는 이제 소일거리로 일을 하신다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소도시에서 현대식 미장원에 밀려 점점 설자리를 잃어 가는 이발소에 애틋한 정감이 느껴진다. 외국에서는 몇 대째 가업을 이어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선대들이 쓰던 자잘구래 한 일상용품까지 소중히 사용한다는데 우린 너무 쉽게 소중한 것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것에 담긴 어른들의 애환이나 지혜는 생각할 뜸도 없이 소비에 편승해 살아 쓸만한 물건임에도 버리기 주저하지 않았잖은가.
추억이 되살아 나는 오래된 이발소에 손님들이 많아지길 기원하며 문을 나서니 초겨울 짧은 해가 붉은 물감을 드리기 시작한다.
19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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