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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수아저씨
작성자 공병임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0-01-13 22: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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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6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이 환하다.

세상에! 밤사이 함박눈이 소리도 없이 내려
장독대는 물론 뜰까지 흰눈 속에 푹 잠겨 고요하게 아침을 맞고 있다.
눈이 부셨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여린 배나무 가지가 힘겹게 팔을 벌리고 있고,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가로 슬리퍼를 신고 나서니 눈송이가 한 움큼 신발 속으로 들어오며 소름이 돋는 다.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도록 싸리비로 마당을 쓸고 들어오는 데 이장님이 방송으로 긴급 마을 회의를 알리고 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진돗개 똘똘이의 밥그릇 주변으로 까치 무리가 어지럽게 발자국을 내고 사라졌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에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자취를 남기는 것은 눈온 다음날 뿐 이다.
눈 녹을 때까지 나는 이제 산골에 갇힌 셈이다. 우리 집 쪽은 산그늘이 길어서 눈이 잘 녹지 않는 다. 대충 아침 청소를 마치고 방바닥에 엎드려 책 몇 권 뒤적이는 데 경로당 가신다던 어머님이 그냥 오시면서 장수 영감이 죽었다는 것이다.

함박눈이 내리던 어제 밤에 아저씨 혼자서 먼길을 가셨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 쪽에서 휑하니 바람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우린 그분을 딱히 불러드릴 호칭이 없어 그냥 장수 아저씨라고 불럿다,
이름이 장수이기도 하지만 아내도 ,자녀도 없는 그분을 마을 에서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 마을에 오신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래도 별로 왕래 가 없이 지냈을 데 삼사년 전부터 우리 집 일을 거들어 주시면서 한 식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눈썰미가 있는 아저씨는 마치 내 집을 다독이듯 여기 저기 손을 보아 주셨다, 자귀나무 밑에 평상도 두 개나 만들어서 페인트 칠 까지 해주신 것이다. 그 뿐이랴 겨울 김치광도, 그리고 잘 마른 곳감까지 그분의 손이 안간 데가 없다. 키만 훤칠하게 큰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대견해 하셨는지, 장수아저씨 돌아가신 다음날 고등학생인 큰아들은 자다가 말고 무섭다며 우리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아저씨를 많이 좋아했는데 아마도 정을 떼는 것 같아 우린 큰애를 한 이불 속에서 재웠다. 녀석과 같이 자는 것이 초등학교 입학한 후로 처음인 것 같아 넓은 아들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살아계실때도 외로웠는데 돌아가시는 날엔 소복이 소리 없는 눈이 길을 밝혀 주었나 보다. 나그네 같은 인생 길을 훌훌 접고 사그라지는 촛불처럼 그렇게 야위시더니.



낼 아침이면 장례식장에서 곧바로 화장터로 가신단다. 피붙이 하나 없는 홀홀 단신의 몸으로 떠나신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프다.

삶이란 게 겨우 한웅큼의 재로 남아 훨훨 뿌려지면 그 만이란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살아 있는 것을 ,건강한 것을 그저 감사해야 하는 건지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사이엔 끈끈했던 정만 있는 건지,
쓰레기통을 들고나서는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내비둬, 내가 이따 불태울께"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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