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로 북적이던 마을의 고샅이 다시 일상으로 고요해 졋다.
농로까지 가득 채워졌던 귀성차량들이 밀물처럼 떠나갔고, 마을 입구에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현수막만 무심히 바람에 펄럭인다.


시름에 겨운 농부들의 살림살이나 각박한 도시에서의 생활이 다 녹녹치 않음을 알지만 울타리 호박넝쿨에서 애호박 한 덩이를 따 주어도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으니 고향은 그래서 애잔한 것인가.


이제 나도 지난밤 담가 놓았던 콩을 삶아 청국장을 띄워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이 가을 청국장만큼 맛난 음식이 또 있을까?
기름진 명절 음식 끝에 먹는 맛이라 그런지 개운하고 좋다. 내 식성은 좀 촌스런 구석이 있는지 양식을 먹어도 된장찌개 생각을 떠올려서 친구들이 늘 산촌 댁이라 놀림을 준다.


세상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해 늘 또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재래식 장을 담으며 살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게다가 요즘 웰빙(참살이) 바람으로 이제서 전통음식이나 산골식 밥상에 관심을 가져주니 일하는 것이 마냥 즐겁다.


이번 추석에도 명절 선물로 된장을 준비 했었다. 내가 정성을 다해 만든 장을 선물 할 때 받는 이도 기뻐하지 않을을까.
건강에 관심이 많은 요즘 콩으로 만든 음식이 인기가 있다. 콩의 주 성분이 단백질이지만 탄수화물이나 지질 비타민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완전 식품에 가깝다. 콩을 청국장이나 된장으로 발효 시켰을 경우 각종 효소가 풍부해 지는데, 특히 콩에 없던 새로운 물질이 발효 과정에서 생겨난다.


유산균 1g속에 백만 개의 균이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청국장 1g 속에는 10억개의 바실러스균이 있다는 것만 보아도 청국장은 우수한 식품이다. 비싼 건강보조식품을 먹는 것 보다 식사 때마다 된장을 먹는 것만으로도 수명을 연장시키고 건강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마당에 콩 삶는 냄새 구수하고 솥뚜껑 열면 뜨거운 김으로 한증막처럼 열기가 후끈하지만 일하는 것이 겁나지 않는다.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는데 내 삶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즐겁다.

고향도 지키고 조상들의 비법도 고수하고, 이렇게 신바람 나는 일들이 모두 에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나는 콩을 삶는다